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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스킨 인 더 게임 : 이론은 우리 인간에겐 지극히 이론적일 뿐이야책/경제경영 2020. 9. 6. 22:00
'스킨 인 더 게임' 네 번째 시간...
출판계 이야기
서평가는 책을 평론하는 사람이지만, 이들이 한 권의 책을 얼마나 여러 번 읽고 평론하는지는 의문이다. 학습의 뿌리는 반복에 있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읽어 봐야 한다. 책은 독자가 읽는 방식,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방식, 저자가 쓰고 싶어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책을 만드는 데 있어 서평가의 선호도를 중심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다. 출판 시장에서 서평가의 위치는 '나쁜 중개인'에 불과하다.
대리인 문제
"당신에게 좋은 일이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손실이 되는데도 그에게는 아무런 손실도 생기지 않는 그런 행동을 취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의 말은 항상 경계하라."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타인이 나에게 좋은 일이라고 먼저 제안한 일은 언제나 내가 이나라 타인에게 좋은 일이었다. 기억해라. 조언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무언가를 팔려고 접근하는 사람은 무조건 피해라.
"그냥 무시해요.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요. 새로운 고객은 매일 탄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로도스의 옥수수 가격
무언가를 팔기 위해 조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판매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판매를 위한 조언은 '광고'라고 봐야 한다. 이때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자신이 팔려는 상품에 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 시대 디오게네스는 판매자라면 법에서 요구하는 것만큼의 상품 정보를 구매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안티파트로스는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품에 관해 판매자가 알고 있는 정보를 구매자들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 장소, 상황, 시장 참여자들의 국적 등 다양한 요소가 변하더라도 계속 유지될 입장은 아마도 안티파트로스의 주장일 것이다.
"도덕률의 입장은 언제난 법률의 입장보다 확고하다. 법률이 발전을 거듭해서 궁극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도덕률이다. 즉, 법률은 바뀔 수 있지만, 도덕률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상당수의 법 규정이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법은 시대나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법이 꼼꼼할수록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는 더 쉬워진다.
불확실성의 평등
샤리아법에서는 특히 '가라르'를 철저히 금했다. 가라르는 '불확실'과 '기만'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거래 참여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라르를 '불확실성의 불평등'이라고 해석한다.
기본적으로 거래는 불확실한 미래를 포함한다. 따라서 거래 참여자 모두 동등한 수준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공정한 거래다. 거래 참여자들마다 부담하게 될 불확실성이 불평등하다면, 그 거래는 속임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라르를 금지하는 샤리아법에도 허점 혹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 불확실성의 불평등이나 정보의 비대칭 정도가 약한 수준이라면, 다시 말해 거래 참여자 중 어느 한편이 거래의 미래 향방에 확신을 갖지는 못해도 약간의 내부 정보만 가지고 있는 수준이라면 가라르가 있는 거래로 인식되지 않는다.
라브 사프라와 스위스인
유대인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거래 조건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판매자가 가진 생각의 투명성까지 추구했다. 거래에 있어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비즈니스 정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투명성의 범주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판매자의 생각까지 아우른다.
그런데 만약 구매자가 시장 어딘가에 있는 익명의 매수자인 '스위스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에는 우리가 정한 윤리 규칙이 느슨하게 적용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 대상이 존재한다.
"이론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 이론적이다."
윤리는 더 명확하게 규정될수록, 즉 덜 추상적일수록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일수록 윤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여, 만인을 위한 동정은 자신에게는 학대일 뿐이라오."
보편적인 윤리가 존재할 수 있는가
윤리를 적용하는 범위에서 '스위스인'을 뺀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단순한 지표가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일반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관념을 이야기하는 지식인 아닌 지식인들의 헛소리와 달리, 절대 도시를 확대한다고 해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확대한다고 해서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지구는 커다란 마을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모든 이의 의견에 동등한 비중을 부여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테네 시민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우리는 윤리적 행위를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그렇게 한다. 보편적인 윤리가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집단은 다시 분화하고, 그 속에서 이해의 상충이 발생한다. 내가 정치제도에 있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옹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무분별한 세계화와 중앙집권화된 다민족 거대 국가가 존속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은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규모가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분파주의 성향을 비난하는 것은 간섭주의자들의 행태 중에서도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이론적으로는 대도시 거주자들도 함께 사는 이웃이고 서로에게 보편적인 도덕률에 기반한 행동을 취하지만, 친근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성주의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을 구분해서 인식한다. 즉 누군가에게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만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의 것
많은 경제학자가 '공공재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공공재란 숲, 호수, 국립공원 등 누구든 향유할 수 있는 공공의 자산을 의미한다. 사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은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면만 보고 사유재 시스템하에서만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집단주의 방식으로 움직여야 집단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집단의 규모는 절대로 클 수 없다. 서로 다른 규모의 집단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개개인은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큰 규모의 어떤 집단에 속해 있지만, 그 집단은 인류라는 집단보다는 규모가 작다. 그리고 특정 집단 내에서도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있고 공유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공간이며 머무는 모든 이가 은율을 실천하는 공간"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미국 연방 수준에서는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내가 살고 있는 주 수준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로 통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수준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로 통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자로 통한다."
어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좌우로 가르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잘 보여 주는 풍자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
그리스어에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많다. 일례로 '신킨디네오'라는 단어는 '리스크를 함께 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상무역이 주요 산업이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이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실제 투자하지 않은 자의 조언을 경계하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하지 말고,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뭐가 들어 있는지 말하십시오."
사실 언론인이 자기가 어떤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금기시된다. 언론인은 항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들은 편향되지 않은 '판관'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자신의 유명세나 공신력을 이용해 투자 수익을 내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자신이 전망 있다고 판단한 주식을 매수한 다음, 자신이 그 주식을 왜 매수했는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2. 어떤 종목의 주식을 매수한 다음 해당 기업이 얼마나 좋은지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시장 조작으로, 이해의 충돌을 수반하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저해한다. 하지만 나는 시장 조작이나 이해 충돌보다도 나쁜 조언을 방치하는 것이 훨씬 더 부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특정 종목에 투자할 수 없다면, 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언론계에 형성된 일반적인 여론을 따라 기사를 작성할 것이다.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면 그에 따라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발생한 손해보다는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는 책임의 중요성이 훨씬 크다. 이해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유발하는 쪽에서 손실의 리스크를 함께 부담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의료계가 가진 불균형
"법체계와 의료 규정이 의사들의 판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좀 더 현실적인 사례로 '암 환자 5년 생존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암 치료를 위한 절제술과 방사선 치료를 떠올려 보라. 통계적으로 절제술을 받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보다 낮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암 치료에 대한 평가가 20년 생존율이 아닌 5년 생존율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를 우선적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평가 시스템 때문에 의사들은 자신의 리스크를 환자들에게 전가하고, 현재의 리스크를 미래로 전가하고, 가까운 미래의 리스크를 더 먼 미래로 전가한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고,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숫자는 훨씬 많기 때문에 제약 회사들은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은 약을 먹게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한다. 제약 회사들의 초점은 더 오래 생존하면서 더 오래 약을 먹어 줄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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