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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 스킨 인 더 게임 :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정의와 균형의 관념
    책/경제경영 2020. 9. 5. 07:12

     '스킨 인 더 게임' 세 번째 시간 ;-)





    언제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판단과 책임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런 관념에 매몰되어 세상의 모든 일에 이런 균형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특히 결과의 영향력이 사소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판단과 책임의 균형이라는 문제의 초점은 직업적으로 혹은 구조적으로 중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판단에 관여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모더니즘의 영향


    이 책에서 말하는 정의와 균형의 관념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정의와 균형의 관념에 부합하지만, 대략 150년 전에 나타난 모더니즘적인 정의와 균형의 관념에는 반한다. 이 책에서는 이를 '지성주의에 입각한' 정의와 균형의 관념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성주의는 행동과 결과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 이론과 실태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 복잡한 시스템의 문제를 수뇌부의 지휘만으로, 다시 말해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우르는 관념이다.

    지성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사조로 과학주의가 있다. 간단히 말해 의심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과학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목적으로 인식하는 관념이다. 굳이 수학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학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가 아니라 과학주의다.

    내용도 없이 복잡하고 실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주장에 대한 날 선 비판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요즘 과학 매체 기자들과 대학의 과학 분야 교수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고차원적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 대한 강한 확신과 통계치에 대한 깊은 이해, 높은 수준의 지성 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더 바람직하게는 실제 세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말을 하는 사람은 행동해야 한다. 오직 행동하는 사람만이 말을 해야 한다."


    수학, 철학, 시, 예술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거기서 얻은 지식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론을 연구하고 수학적 접근법을 개발하라. 하지만 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 이론과 접근법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지를 가르치려고 들지는 마라. 그들은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들을 선택할 것이다."


    • 지성주의 :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는 태도나 경향. 지성 또는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상의 입장

    • 톱다운 방식 : 기획예산처가 예산의 총액 한도를 결정하면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


    조명과 강연자


    흔히 경찰들이 용의자를 취조할 때 용의자의 얼굴 쪽으로 강한 조명을 비추는 것 역시 용의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심리 상태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조명 때문에 강연할 때 불안감이 드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그저 강단에 올라 많은 사람 앞에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조명 작업을 하지 않고, 조명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화라는 흐름은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의 과실과 분리 문제다.



    단순한 해법의 추구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해법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한 해법은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을 때 두뇌 활동이 무뎌진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가 아픔을 통해 배운다고 말했는데, 즐거움이나 짜릿함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관건은 인간의 두뇌가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전혀 다른 양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나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을 때는 두뇌 활동이 무뎌진다. 리스크나 어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나의 판단력은 독서를 통해 얻은 것도 아니고,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고찰을 통해 얻은 것도 아니고, 지적 호기심을 통해 얻은 것도 아니다. 

    큰돈을 걸고 직접 투자시장에 뛰어들어서 얻게 된 것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무능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자신과 비슷한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낼 뿐이다. 적절한 동기만 부여된다면 아이들은 수학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히 수학을 활용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규제와 사법제도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맹수인 대기업들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법규를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문제들이 따라온다. 시민들의 자유가 제한되고, 법규의 힘을 빌려 정부와 관료 그리고 그들의 인맥이 기업들을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똑똑한 법률가들 앞에서 법규는 무력화되기 일쑤다.

    법규는 일단 시행된 후에 대다수 사람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폐지하기 어렵다. 해당 법규로 이익을 얻는 소수의 강력한 저항과 압박 때문에 정치인들이 법규를 폐지하는 데 나서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거래에 큰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영미권에서는 규제보다 사법제도를 통한 문제의 해결을 선호한다. 누가 나에게 해를 끼치면 그 사람에게 소송을 제기해 손해를 복구하는 식이다.

    결국 규제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던 테일 리스크가 너무 늦게 가시적으로 나타나 막대한 파괴를 유발하는 경우, 처음부터 소송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어느 사회든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나는 여전히 최대한 자유를 누리는 편을 선호한다.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는 삶의 방식을 '의무론적 자유지상주의'라고 한다. 자유는 실수를 범할 자유까지 아우른다. 단, 실수로 발생한 손해가 자기 자신에게 국한되는 경우에 한정된다.



    책임과 존엄성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관한 문제다. 나는 기계와 인간을 가르는 커다란 차이점이자 인간 사이에서 더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을 가려내는 기준이 바로 행동(판단)에 책임을 지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는다면 그 누가 그 어떤 업적을 이루어 내더라도 그의 삶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판단은 자기가 하고, 실패의 책임은 다른 이들에게 떠넘긴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모더니즘이나 지성주의의 흐름 속에서는 이러한 존엄성의 토대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존엄성을 지키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내가 보살피고 대학까지 졸업시켜야 하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이지 않은 자신의 행보에 다른 윤리적인 요소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물론 다른 사람과 집단 전체를 위해 기꺼이 책임이나 리스크를 떠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핵심 이익을 희생한다.



    기능 장인들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최적화를 추구하고, 기한을 단축하고, 극한의 효율성만을 목표로 하다 보면 그 일이 싫어지게 된다. 


    1. 기능 장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다.

    2. 기능 장인은 자신의 일에서 예술성을 추구한다.

    3. 기능 장인은 자신의 일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4. 대부분의 경우 장인에게는 금기가 있다.


    "타락한 자들은 지름길을 추구하고, 덕이 있는 자들은 먼 길을 따른다"


    내 일을 대신해 줄 보조 인력을 두지 말라. 보조 인력을 두면 본능적으로 여유 시간에 흥밋거리를 찾게 되고, 그러면 인생 전체가 흥미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보조 인력은 내가 해야 하는 본질적인 업무를 대신 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웅은 책상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지지만 학계라는 곳이 사회 현장에서 도망 나온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서 그런 것일까? 내가 보기에 학자라는 사람들은 사회 현장을 변두리에서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 무어라고 말만 할 뿐 그 속으로 뛰어들어 행동할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세계화와 소극적 보호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행동하는 자와 책임지는 자의) 분리 양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호주의도 심화되고 있다. 극심한 불균형을 만들어 내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결국은 바벨탑의 붕괴 같은 일이 이 세상에 재현될 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하지만,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보호주의는 경제 논리, 특히 네오클래식 경제학의 논리에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의 토대인 수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른 것들을 전부 희생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결코 이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경제학의 논리에서 보더라도 불합리한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제학 분야의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듯,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금전적 이익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금전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일자리를 수출하는 방식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에는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자리 수출은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레테'를 이야기했는데, 나에게 있어 '아레테'는 책을 쓰는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한다.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무언가가 빠져 있다. 자신의 일에 영혼을 불어넣던 사람에게 '당신의 일은 가치 없으니 다른 직업을 가져라'고 말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탈중앙화와 분권화는 사회 체제를 안정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있어 직업이 갖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 네오클래식 : 고대희랍과 고대로마의 고전의 원칙으로 희귀하는데 기초를 둔 양식적 발전의 하나

    • 아레테 : 어떤 종류의 탁월성 혹은 도덕적 미덕을 의미



    사회 지도층의 책임


    법은 위대하다. 그런데 법을 행사하는 판관이 부패하거나 무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판관들은 사회의 결속을 해치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긴 책에 따르면, 부당한 판결을 내렸음을 알게 된 왕이 그를 잡아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죽으로 의자를 만들게 하고, 그의 아들을 새로운 판관으로 임명해서 그 의자에 앉아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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