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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 스킨 인 더 게임 : 내가 싫어하는 다른 이들의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말자
    책/경제경영 2020. 9. 2. 21:50

     '스킨 인 더 게임' 두 번째 시간 :-)




    행동과 책임의 균형


    다른 이에게 기대하는 바의 행동을 그대로 다른 이에게 하라 - 해법은 절대 복잡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생명체가 됐든,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같은 사회 안에서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면서 살아야 하는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자 법칙이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될 수 없다. 행동과 책임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균형'이다. 문명화를 거치면서 표면적인 내용이 정제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함무라비법을 다시 생각한다


    총 282개 법 조항을 담고 있는 함무라비법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성문법으로, 함무라비법을 관통하는 중심 원칙은 바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라'는 것이다. 함무라비법에 따르면 그 누구도 숨겨진 테일 리스크(tail risk)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과실만 취할 수 없다.


    "건축업자가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무너져 거주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건축업자는 사형에 처한다."


    '눈에는 눈'이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탈리오법도 함무라비법에서 나왔다. 그런데 '눈에는 눈'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탈리오법은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현대사회 법체계에는 피해자를 번거롭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데다 법체계의 지대 추구자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법체계를 버릴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앞뒤가 막힌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만 책임 있는 사람들이 밥 루빈 트레이드 같은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처벌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반 대중을 보호할 수 있다.

     


    은율과 항금률의 차이


    왜 은율이 황금률보다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고 느껴질까?

    우선 황금률은 다른 이에게 좋을 것으로 추정되는 행동을 하라고 말하는데, 은율은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지보다 무엇이 나쁜지를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좋은 것을 더하는 비아 포지티바 방식보다는 나쁜 것을 빼는 비아 네가티바 방식으로 오류를 줄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더 강한 국가가 당신의 국가를 대하는 적절한 방식이라고 여겨지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약한 국가들을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자녀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당신의 부모에게 하라."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장례식에 꼭 참석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 장례식에도 참석할 테니까."


    이런 맥락에서 의견 표출의 권리에 관한 균형을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의견이 어떤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모르기 때문에 의견 표출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해칠 수도 있는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이다.

    의견 표출의 권리를 제한하는 압력은 국가권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와 문화생활 속에서 날뛰는 사상경찰(thought police) 역시 의견 표출의 권리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보편율은 잊어라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도덕적 균형을 적용하면서 '덕 윤리' 관념이 정립되었고, 칸트의 정언명령이라는 관념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어떤 곳,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의 행동과 비교하더라도 보편적이라고 판단될 만한 행동을 취하라'라고 해석한다.


    "자신의 격률과 의지가 보편율에 합당할 때만이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 그 자체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칸트는 규정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가 제시한 관념은 너무 복잡하다. 그리고 너무 복잡한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편적인 행동은 논문으로 읽을 때는 멋있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행하려면 끔찍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우리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자 현실적인 존재로, 범위나 규모에 민감하다. 작은 것은 큰 것과 분명히 다르다. 실체적인 것은 추상적인 것과 분명히 다르다. 감정적인 것은 논리적인 것과 분명히 다르다. 거시적인 해법은 미시적인 해법보다 언제나 정확도가 떨어진다.

    우리는 현재 처해 있는 환경에 적합한 행동을 취해야 하며, 지금 상황에 맞는 실질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보편적이면서 모호한 행동은 독선적인 사이코패스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칸트는 보편성을 주장했지만,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이 바로 그 보편성의 희생자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활동가가 구체적인 행동보다는 모호한 관념을 더 좋아하고, 사회정의를 추구한다는 '전사'들은 사람들을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넓은 범위의 카테고리'로 인식한다.

    보편율을 무분별하게 적용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미시적 해법과 거시적 해법을 무분별하게 융합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실제 상황을 관념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사회(시장)에 파열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칸트에서 뚱보 토니까지


    "일단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가 당신에게 위력을 행사한다면 당신도 그 사람에게 위력을 행사하라."


    뚱보 토니는 가상의 인물로, 평상시에는 누구에게 화를 내거나 해를 끼치려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간다. 단 뚱보 토니는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머니게임을 하는 금융투자사 책임자 같은, 말하자면 그가 '역겨운 놈들'이라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그들과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고객들까지 도움으로써 부자가 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은행의 이익은 금융인들이 가져가고, 손실은 조용히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전가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여기서 발생하는 불균형은 반드시 커다란 문제로 표출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불균형을 막아 줘야 할 규제 당국은 오히려 리스크의 누적과 은폐를 도와주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사기꾼과 바보


    "잘못된 조언에 상응하는 처벌이 없는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조언해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의 조언은 받아들이지 마라."


    신뢰는 지식의 문제이자 윤리의 문제다. 어떤 이들은 잘 몰라서 결과적으로 남을 속이게 되고, 어떤 이들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을 속인다. 전자는 과거의 행운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을 남에게 전파하고, 후자는 자신의 리스크를 남들에게 몰래 전가한다.

    잘 알지 못해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런 선택(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걸러 내는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해 이들은 현실에서 도태되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는 수준의 영역에 이를 때까지 사회에서 밀려난다.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시스템 학습을 통해 진화하며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사실 무엇이 바보 같은 행동(선택)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항상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선택의 옳고 그름을 항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학습을 행하는 사회뿐이다.

     


    실제 경험과 지식은 다르다


    현실 세계에서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실체'다.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 삶에서 최종적인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표면적인 것이나 명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을 훨씬 더 잘한다.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행동을 통해서만이 정확히 알 수 있다."


    진짜 실력자는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승리를 이루어 낸다. 사실 책임과 판단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곳에서는 그것이 경제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협잡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협잡꾼 자신은 자신의 행동을 '공학'이라고 설명할 테지만 말이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드러낸 '선호도'에 기반한 학문이다. 여기서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경제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이나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그 자체다.

    직접 관찰할 수도 있고 정량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행동 말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미래 상황에 대한 예측은 아예 무시하라.


    "말로 하는 예측은 베팅이나 행동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예측한 것은 자주 틀리는데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예측은 정확하게 하는데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예측 적중률이 아니라 예측을 정확하게 했을 때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느냐다. 예측이 틀리더라도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이 쌓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에 대해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유사 이래 협잡꾼들이 즐겨 사용해 온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역문제' 접근법이 있다. 그런데 결과를 안다고 언제나 답을 얻거나 원인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의 진화만 하더라도 우리는 진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 수준에서 발생하는 '검은 백조' 문제를 비롯해 불확실성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도 실제 세상에서 일어난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다면 '검은 백조'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실제 세상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축적될수록 문제 해결 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린디 효과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실제 세상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식을 늘려 간다면 합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린디 효과가 단순히 생존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편향으로 낙관주의 편향과 과신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인 '생존 편향'과 다른 이유는 '시간'의 검증을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논리적 검증을 통해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은 행동은 대개 시간과 경험에 따라 축적된 지식에 기초한다. 어떤 행동이 합리적인지 미리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행동이 무엇인지는 미리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 

    우선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고, 그다음으로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동은 명백히 비합리적이다. 통계치에 반하는 행동이나 통계를 무시하는 행동 역시 명백히 비합리적이다. 지금까지 실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온 행동을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리석은 방식이라고 평가받던 행동이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어리석은 행동일 리 없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세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성립된 체제에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아 이야기할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다."


    "집단을 생존할 수 있게 하는 행동이, 집단을 존속하게끔 만드는 행동이 바로 합리적인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절대적인 합리성'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견지에서 봤을 때 숨겨진 테일 리스크의 위험성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절대로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다. 

    리스크 중에는 철저하게 회피해야 하는 것도 있다. 동시에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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