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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스킨 인 더 게임 : 불평등과 책임에 관한 통찰책/경제경영 2020. 10. 20. 10:32
'스킨 인 더 게임' 아홉 번째 !
불평등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용인할 수 있는 불평등으로,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 다수가 영웅으로 인정하는 사람들과의 격차다. 사람들은 이런 영웅들을 보면 오히려 '팬'이 된다. 이들을 닮으려 하고 존경한다. 이들과의 격차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일은 없다.
다른 하나는 용인하기 어려운 불평등으로, 나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의 격차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이들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가 작아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부동산 임대업과 국가에서 허가하는 사업권이 주요한 부의 취득 수단인 나라들에서는 부의 축적이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된다. 이런 나라에서 일반 대중은 규제에 묶여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사이,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들 그리고 이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규제에서 벗어나 부를 축적한다. 규제가 복잡한 나라들에서 공무원들은 은퇴 후 기업들에 규제를 피하거나 규제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컨설턴트로 활동한다. 부자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의 부를 빼앗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부동산 임차료가 낮은 나라들에서는 부의 축적이 부의 창출로 인식된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화내는(혹은 화를 내야 하는) 대상은 높은 자리에 앉아 고소득을 올리며 책임지는 일에서는 면제된 사람들이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더라도 지위가 떨어지지 않고, 소득이나 재산이 줄어들지 않으며 실업급여를 타는 일도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리스크를 뒤로 미루고, 영업 성과를 조작하고, 연봉과 보너스를 챙기고, 은퇴하거나 이직한 후에 뒤로 미룬 리스크가 드러나면서 영업 성과가 나빠지면 자신의 후임자들을 비난한다.
정적 불평등과 동적 불평등
"진정한 평등은 확률의 평등이다. 판단과 책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이 시스템의 부패를 막는다."
여기서 잠깐, 확률의 평등이 곧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경제학자들은, 특히 자신의 판단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경제학자들은 변화하는 무언가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하며, 변화하는 대상도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분석하고 예측하려고 한다.
"정적 불평등은 불평등을 한 장의 사진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삶의 과정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가 반영되지 않는다. 동적(에르고드형) 불평등에는 미래와 과거의 변화 요소들이 반영된다."
사회 하층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조금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는 동적 평등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동적 평등 상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넓게 만들고 부자 계층이 순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이 자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로 현재 위치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사회가 더 평등한 사회다. 동적 평등 상태에서는 에르고드 가정이 구현된다. 이때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발생 가능성이 계속해서 유지된다."
에르고드 가정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심리학 실험을 통해 도출된 확률과 합리성에 관한 결론이 대부분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산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보다 심각하지만, 미국인들의 소득과 자산을 계층별로 구분했을 때 미국 사회가 에르고드 가정이 구현된 사회라면 미국인 한 사람은 평생 동안 사회계층의 비중과 똑같이 소득과 자산 수준의 오르내림을 겪게 된다.
나는 에르고드 상태와 반대되는 개념을 '차단 상태'라고 부른다. 차단 상태의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부자를 보며 분노하는 것이 정당하다.
• 에르고드 가정 : 에너지 일정의 집합이 취할 수 있는 상태는 모두 동일 궤도상의 점으로 표현된다. 집합의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분자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어떤 시각에서 실현된 상태는 시간과 함께 하나의 곡선(궤도)을 그리면서 에너지면상의 모든 위상점을 통과한다. 따라서 집합이 에르고드적이면 장시간 평균의 의미에서 집합에 허용되는 미시적 상태는 모두 같은 확률을 가진다. 에르고드 가정을 사용하면 집합계의 장시간 평균은 통계 평균으로 생각할 수 있다.
피케티 그리고 만다린 계층의 반란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며, 재분배와 세금 정책 등으로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자본소득의 성장이 노동소득의 성장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
'지식 경제'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특정 기간 동안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주장하려면 해당 기간에 사회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줘야 한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분포의 꼬리 부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승자 독식 구조가 심화될수록 사회는 통상적인 정규분포에서 조금 벗어난 모양을 나타낸다. 사실 어느 사회든 부자가 된다는 것은 승자 독식 구조가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면 꼬리 부분에 있는 부자들의 기득권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통제가 행해져야 한다. 이 같은 유형의 통제를 가장 잘 행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학자들이 아니다. 문제 그 자체도 결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들어 낸다. 진짜 문제는 자신의 소신을 밝힌 피케티가 아니라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만다린 계층의 반응이다.
"누군가가 피케티의 주장에서 명백한 경험적 혹은 논리적 오류를 발견했다면 그 사람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다. 피케티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사회의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사회적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미국의 대학 시스템이나 프랑스 사회가 전복되는 일만 없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월급을 받을 것이다. 상황이 나빠졌을 때 책임지는 것은 대다수 평범한 국민이다.
질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향한다
보통 시민들은 부자들에 대해 지식인들이나 고위 관료들만큼 강한 질투를 내보이지는 않는다. 질투는 사회계층을 몇 칸씩 건너뛰어서까지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통 시민들은 부자들을 질투하기보다는 자신의 생황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부자들을 질투하는 건 부자들 바로 아래 계층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공산주의 운동에 가장 먼저 참여한 사람은 부자들 바로 아래 계층 사람들이었다. 부자들에게 불만을 갖는 것은 트럭 운전사가 아니라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자신보다 '덜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라는 감정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겨나기 쉽다고 말했다.
"선지자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선지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질투는 같은 직업 사이에서, 같은 능력 사이에서, 같은 처지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물론 지식인들이 부자가 되는 것에 '약탈'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수도 있으며, 노동자들이 이에 호응해 부자들을 죽이자고 나설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영국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에 배정된 예산으로 TV나 식기세척기 따위를 구입했다가 적발되어 국민들이 격분하자 항변했다.
"100만 파운드쯤 가져다가 채권을 구입한 것도 아닌데!"
불평등, 부, 사회계층
지식인들이 불평등 문제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을 수직적인 구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세상을 그렇게 인식할 거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질투가 증폭되는 일이 적었다. 옛날 부자들은 다른 부자들과 접하는 기회가 매우 적었고, 다른 부자들과 경쟁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같은 계층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히 계층 내에서도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경쟁이 심화됐다.
이제 부자들은 다른 부자들하고만 어울려 산다. 나는 소수 인종 출신의 택시 운전사와 어울리거나 다른 서민 계층과 함께 운동하는 지식인이나 고위 관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들은 빈민과 서민에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조언도 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공감대와 집단의식
일정한 규모나 범위를 벗어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도덕률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옅어진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 역시 일정한 규모나 범위 이내에서 형성되며, 같은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는 집단 내에 형성된 일종의 보호장치로,
"당신 가문이 몰락하면 우리가 당신 가문의 후대를 지원할 테니, 우리 가문이 몰락하면 당신들이 우리 가문의 후대를 지원해 주시오."
호도의 수단으로 전락한 데이터
흔히 반론의 여지가 많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할 때 온갖 종류의 데이터와 도표를 끌어다 쓴다. 명백하게 옳은 주장을 할 때에는 많은 데이터를 첨부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나는 '검은 백조'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단 하나의 도표(극도로 큰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확률, 통계, 데이터 과학은 관찰을 토대로 정립되지만, 이 요소들이 지나치게 많이 제시된다는 것은 관찰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통계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대중은 도표가 많이 덧붙여져 있으면 저자가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쉽게 믿어 버린다. 복잡함으로 오류를 덮으려는 시도가 성공하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 역시 모호한 주장을 복잡한 데이터로 덮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 인류는 현대에 이르러 폭력을 덜 행사'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적인 법과 제도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핑커가 자신이 사용한 숫자들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 후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터를 찾아 자신의 책에 삽입했을 뿐이다. 그는 실증적인 데이터를 먼저 수집하고 데이터들을 엄격하게 계산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일반 대중과 바보 지식인들은 그의 책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공직자들의 윤리
오바마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떠난 첫 해에 출판업계 한 곳에서만 총 4000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다. 반면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를 주창하던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입각한 사업가들과 투자가들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오바마의 행태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돈을 좇는 일 자체를 탐욕으로 인식하면서도 어이없게도 상업 활동 이외의 수단으로 돈을 버는 일은 탐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가 된다는 것을 정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 두 경우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동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 둘은 너무나도 다르다. 공직에 들어서는 부자들은 무언가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이미 검증받은 상태에서 공직에 들어서는 셈이다. 물론 부자가 되는 길은 매우 다양하고 운도 많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현실 세계에 직접 부딪히면서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공직을 축재에 활용하는 것은 명백히 비윤리적인 행위다."
공직에 들어서는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민간 부문으로 자리를 옮기고 일정액 이상 소득을 올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후, 그 서약을 이행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공직은 사명감으로 임해야 하는 자리다.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명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대신 적은 액수의 월급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 공직자다.
나중에 부자가 되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공직에 들어서려는 사람들은 사전에 걸러 내야 한다.
고위 공직자들은 산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을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가 하면 산업계에 적용되는 규정을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야 규정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액 연봉을 받으며 민간 부문으로 이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방식으로 민간 부분의 상납 고리가 형성돼 있다. 일단 상납 고리에 들어간 공직자는 공직자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이 고리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마련이며, 후임자들이 이 고리를 부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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